이곳 시간으로 밤 12시. 아침부터 지금까지 전시 장소인 TENT 갤러리에 있습니다. 엊그제는 새벽 2시, 어제는 1시 반에 집에 갔는데, 오늘은 아마 그보단 일찍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전시 준비는 내내 쉽지 않았습니다. 맨 처음엔 전시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은 다큐 제작 내용을 갖고 전시를 연다는 점, 스스로 이 전시 자체에 확신이 잘 안 섰습니다. 다행히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처럼, 패트릭이 앞장서서 나를 잘 이끌어주었습니다. ‘2년 넘게 진행해오면서 담아온 것들이 충분히 많잖아. 어떻게 해왔는지 어떤 걸 담아왔는지, 그냥 그걸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야.’ 라는 말에, ‘그래,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너무 잘 보여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동안 어떻게 이 내용들을 담아왔고 어떻게 이어왔는지, 그 기록들을 잘 보여주면 된다고, 쉽게 받아들이고서 차차 풀어나가기로 마음먹고나니 훨씬 더 수월해졌습니다.
일단 입구 옆 벽면에서는 인터뷰 영상들 편집본을 틀어놓고, 핵심이 될 가운데 면에는 다큐 스토리보드를 시각적으로 펼쳐놓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인터뷰한 농부들의 사진, 풍경사진, 그리고 인터뷰 내용 스크립트를 모두 다 붙여서 전시하고, 나머지 한쪽 면에는 관람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어떤 ‘행동’들을 제안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여름 일본에서 전시했던 ‘Free Food Kit’ 프로젝트를 보완해서 다시 마련하고, 그 옆에는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의 생각을 담은 메시지를 수집하고, 그걸 모아 다시 인터넷으로 공유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과정에 필요한 물품들은 최대한 지구에 덜 해로운 것들로, 되도록이면 새로 사지 않고 있는 것들로 쓰고, 사더라도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닌 것, 그리고 재활용품 같은 친환경 제품들로만 쓰기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하고 마련해나가고 펼쳐가는 과정이 버겁고 피곤하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잘 도닥이며 하나씩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이 다큐를 진행하는 내내 참 많은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좋은 인연들이 이어졌지요. 친환경 종이를 어디에서 살 수 있을지 검색해보다 알게 된 ‘Paper Stuff‘라는 작은 사회적 기업, 네팔에서 공정무역으로 통해 들여온 천연 핸드메이드 종이를 판매하는 업체에 이 전시와 우리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혹시 종이를 협찬해주실 수 있는지 메일을 드렸습니다. 반갑다고, 작은 부분이라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몇 차례 메일이 오갔고 젊은 사장님께서 이곳으로 직접 찾아오셔서 여러 종류의 종이들 한 꾸러미를 안겨주셨습니다. 말린 나뭇잎과 꽃잎들이 촘촘히 얹어진 고운 종이들을 받아들고서, 마음이 찡할 정도로 기뻤습니다. 역시 여기서도 이렇게 진심이 통하는구나, 이런 크고 작은 도움들로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구나, 하는 게 실감나며 마음이 벅찼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곳곳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있으니까, 분명 이 전시도 잘 치를 수 있을테지, 아마 앞으로 남은 편집 작업들도, 전체 다큐 마무리 작업도 쭉 그럴테고, 하며 용기가 불끈 솟아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드디어 내일입니다. 아마 온종일 정신없이 바쁜 순간들일테지만, 쭉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지나온 길들, 그 길 위에서의 무수한 감동과 가르침들, 함께 해온 수많은 고마운 얼굴들. 이 글을 읽고 계실 분들께도, 따뜻한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토론 행사와 전시를 잘 치르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