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농업 – 후쿠오카 마사노부
41p
대개의 과학자들은 “이렇게 하면 좋다, 저렇게 하면 좋다”라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간다. 농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결과 비용과 노력이 늘어나는 기술이나 농약, 비료 등을 새로 도입하게 된다.
나는 ‘일체무용’의 입장에서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저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쓸데없는 기술과 비용과 노력 등을 배제해 왔다. 이것을 30년 동안 계속해 왔더니, 마지막에는 씨뿌리기와 짚뿌리기만을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농사법이 되어 버렸다.
‘일체무용’이라는 것은 쓸데없는 인력의 낭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아무 것도 안하고 벼나 보리를 수확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이 농사짓지 않아도 자연이 농사짓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잘 생각해보라. 이 세상에서 “이것은 도움이 된다, 편리하다, 가치가 있다, 이렇게 하면 좋다”라는 것들은 모두 인간이 미리 그렇게 하면 가치가 있도록 그런 조건을 만들어 놓은 뒤의 일이다. 본래 없어도 되는데, 없으면 곤란하도록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면 좋다, 이것이 가치가 있다”라고 마치 새로운 발견이나 진보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46p
자연농법이란 사람의 힘이나 지식을 더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 자연 속에 파묻히고 자연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가려는 농사법이다. 어디까지나 자연이 주체로서, 자연이 농작물을 기르고 인간은 그것에 봉사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과학농법이란 인간의 지식과 힘을 자연에 가하여 더 많은 수확을 올리려는 농사법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주체이며, 인간이 자연을 최대한 이용하여 물건을 만들려고 하는 농사법이다.
자연농법은 무위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구심적인 농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자연이 간직하고 있는 이치와 조화, 질서의 세계 속에서 사는, 즉 참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학농법은 욕망의 확대를 추구하므로 차차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 원심적으로 팽창, 분열해 가지 않을 수 없는 농법이다. 따라서 과학의 발달에 따라 모든 것을 인간이 처리해야 하는 천수관음식 농법이고, 목표와 수단이 다양해짐에 따라서 고생도 한없이 늘어나게 된다.
자연농법은 자연의 도, 순수, 무위의 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가 출발점이고 결론이고 수단도 된다. 즉 편하고 즐거운 농부의 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뿐더러 전혀 인위적인 것이 없는 달마 농법이기 때문에 땅을 갈지 않고, 비료를 안 주며, 농약을 안 치고, 잡초를 뽑지 않는 것이 4대 원칙이다.
344p
사람의 발이 맨흙에 닿는 일이 없어지고, 손은 꽃이나 풀로부터 멀어지고, 눈은 하늘을 보지 않고, 귀는 새소리를 듣지 않게 되고, 코는 배기가스로 마비되고, 혀는 소박한 자연의 맛을 잊어 버렸다. 이제 인간의 오관은 모두 자연과 단절되고 아스팔트 위를 차로 다님으로써 흙으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인간의 참다운 삶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365p
산길의 제비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는 것이 아니지만, 간혹 어떤 사람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제비꽃을 마음에 담는다. 그때 그 사람은 알게 된다. 그 꽃의 진정한 가치를.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농사법도 또한 변하지 않는다. 보리의 입장에 서서 보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리는 그 사람을 위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