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 ‘자연농’ 팀의 애니메이션 인턴, 박희영 님의 글입니다. 지난번 글에 이어지는, 3주 동안의 일본에서의 경험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여행 이주째. 메기지마에도 익숙해지고 시차적응도 될 무렵,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하나 싶더니 컴퓨터가 푹하고 꺼져버렸다. 온갖수를 써봐도 아무 반응없는 녀석.. 뭔가를 만들어야된다, 진전이 있어야된다는 자기압박감이 있어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다 뜻이 있어서 그런것이겠지하며 바로 앞에 있는 현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논밭!
주거주지는 메기지마였지만 그 사이 틈틈히 패트릭, 수희언니를 따라 섬밖 농가에 다녀왔다. 모든게 새롭기만한 나. 친가나 외가나 모두 서울이였기에 시골에 내려갈일이 없었다. 걸음마다 푹푹 꺼지는 진흙.. 콘크리트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다.
햇빛이 무덥게 찌는 날. 하늘이 파랗고 쨍쩅하다! 논밭을 둘러보며 한가운데 서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은 내딜때마다 메뚜기인지 여치인지 이름 모를 아이들이 이리저리 날뛰느라 정신없다. 몸을 숨긴다고는 하지만 앞뒤로 흔들리는 풀잎을 보면 아 저기있구나!하고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8월. 잠자리떼가 빙글빙글 논위를 맴돌고 있다. 빨간 꼬리도 보이고 파란 꼬리도 보이는게 고추잠자리뿐만은 아닌것 같다. 옆에 있던 코우노상이 말하길 잠자리떼가 많이 있다는건 논이 건강한거라고..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가다듬으면 주위에서 생명의 소리가 들려온다. 졸졸 흘러가는 개울소리, 개굴개굴 개구리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쏴아 흔들리는 대나무숲의 소리…. 이곳은 살아있다.
한 식물을 보면 그 열매를 먹어보고 잎의 냄새를 맡아본다. 잎사귀 주위를 살펴보면 자그마한, 손톱크기도 안되는 작은 생명들이 조용히 제 할일을 하고 있다. 눈을 감아보자. 따스한 햇빛이 느껴진다.. 머리카락 사이로 살랑거리는 바람도, 내 마음을 달래는 평안함도..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자연이란 우리의 단순한 배경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몸소 체험했기에 열릴수 있었던 감각들. 자연농은 농부마다 행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 밭에서 느낄수있는 살아있음은 같다. 벌레와 잡초와 작물과 사람이 모두 어우러져 사는 곳.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숨쉴수 있는 곳. 두리뭉실하게 그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자연이 조금씩 조금씩 현실로 다가왔다. 더 가까워질수 있을까.. 그간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표지판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의 마지막주. 직접 농사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하루 5-6시간씩 농사일을 도우면서 지내게된곳,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슈메이 산타크루즈 농장. 이곳에서의 이야기도 조금씩 차근차근 풀어가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