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넥스트젠’에서 준비한 <조화로운 삶으로의 전환> 모임이 열렸습니다. 전기에 의존하지 않는, 더 건강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비전화공방’, 인천 검암의 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과 일본 ‘에즈원커뮤니티’의 교류 이야기, 올해 초 규슈 지역의 다양한 움직임을 살펴보고 온 ‘넥스트젠’ 친구들의 발표와 함께, 저는 작년 상반기 내내 이어진 다큐 ‘자연농’의 일본 상영회에서 만난 사람들, 자연농을 중심으로 한 일본 내 대안을 찾아가는 여러 움직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작 전, 화면에 뜬 포스터 속 이름을 읽어보면서, 돌고 도는 인연에 대해, 좁디 좁은 세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비전화공방’의 단디와 ‘넥스트젠’의 보파, 그리고 저. 발표팀 넷 중 세 사람은 2012년 여름 ‘청년귀농한마당‘ 행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5년 전 그때는 막연하게 귀농에 관심을 두고 있던 우리가, 따로 또 같이, 자기 자리에서 부지런히, 비슷한 흐름의 길을 꾸준히 걷고 있다는 걸, 그 길 위에서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품고서 다시 모였다는 걸 떠올리는데 괜시리 마음이 벅찼습니다. 그 지나온 날들이 까마득하기도 하고, 열심히 걸어온 것 같아 기특하기도 하고, 이렇게 마음 맞추어가며, 함께 걷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기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지요.
사실 ‘비전화공방’과의 인연도 독특합니다. 오래 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마지막으로 작업한 책이 바로 ‘비전화공방’의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였거든요. 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거듭 원고를 읽어가며, 자료조사를 위해 홈페이지를 꼼꼼하게 살펴가며, 포근한 흰 수염을 품은 참 선한 인상의 후지무라 선생님과 정이 듬뿍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복잡한 도면과 어려운 용어들 때문에 다른 어느 원고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어서 힘겨워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결국 작업 중간에 출판사를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비전화공방’과는 영영 이별인줄로 알았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또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인연이란 정말 오묘하고도 신기하구나, 싶었습니다.
하나 더, 이번 넥스트젠의 규슈 방문을 열심히 도와준 친구 오하이오는 저희 다큐 ‘자연농’의 든든한 도우미이기도 합니다. 다큐 초기부터 발벗고 나서서 취재와 통역, 번역 작업에 참여했지요. 2012년도엔 저희 다큐 프로젝트를 도왔던 오하이오가, 2017년도엔 넥스트젠 규슈 프로젝트를 도왔고, 오하이오의 그 도움들 덕분에 이 자리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좀 더 넓혀보면 오하이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손길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고 또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많고 많은 마음들을 헤아려보는 동안, 퍼뜩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각각 다 다른 배경이어도, 그 모든 마음들이 바라는 건 결국 하나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함께 사는 삶, 지구에 폐를 덜 끼치는 삶, 더 즐거운 삶, 의미 있는 삶, 창조하는 삶..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넓게 보았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큰 흐름은 같습니다. 그 큰 목적을 공유하고 있기에, 모두가 선뜻 손을 내밀고 돕고 거들며 함께 길동무가 되어줍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게, 힘을 북돋우면서, 더 마음을 꺼내고, 의지를 모아가며, 씩씩하게 걷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다큐 ‘자연농’을 만들고 퍼뜨려온 시간 내내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겁니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이런 흐름을 ‘거미줄망’이라고 불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점점 더 자라나고 있는 ‘긍정적인 몸짓’들, 그리고 그런 몸짓을 실천하고 있는, 비슷한 가치를 믿는 이들이 만나 서로를 형제라고 느껴가며 그 거미줄을 함께 짜나가는 것. 2017년 지구의 날 열린 <조화로운 삶으로의 전환> 모임은 그렇게 서로의 거미줄들이 만나고 함께 엮이었던, 참 아름다운 자리였습니다.
* 이날 제가 발표한 내용을 정리해서 함께 올려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