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에서 열린 상영회는 독특하게도 한 가정집의 거실에서, 일본인 관객분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자막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상영회를 위해 아름다운 공간을 제공해주신 후사코님은 올해 여든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찬 어르신입니다. 1979년 후쿠오카 마사노부님이 캘리포니아에 오셨을 때 일본어-영어 통역으로 여정에 쭉 동행했고, 그 여정을 기획했던 래리 콘님과도 꾸준히 친분을 쌓아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3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 인연 덕분에, 오레건주에 사시는 래리 콘님도 이번 상영회에 오셨습니다. 자동차로 꼬박 6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지만, 마침 이 지역에 볼일이 있어서, 그리고 후사코님과 저희를 만나고 싶어서 일부러 일정을 맞춰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몇 년에 걸친 편집과정을 거치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정이 흠뻑 들었지만, 사실 저는 이분을 실제로 뵙는 게 처음이었습니다. 2012년 취재 때에는 패트릭 혼자 가서 인터뷰를 담아왔습니다. 첫 만남인데도 무척 친근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신 덕분에 참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후사코님 가족이 수십 년 넘게 살아오신 이 아름다운 집은 후쿠오카 마사노부님이 머무르셨던 집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후사코님은 뒷뜰의 작은 정원이 너무도 손질이 안되어 있어서 손님께 보여드리기가 무척 민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염려와는 달리 ‘정말 자연스럽고 아름답네요. 내가 미국에 와서 본 정원들 중 최고에요.’ 라며 극찬하셔서 놀랍고도 기뻤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시며 밝게 웃으셨습니다. 후사코님과 남편 미노님이 함께 정성껏 가꾸고 있는 정원에는 재미나게도 버섯을 키우는 구역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원하는 사람은 마음껏 가져가라며 미리 따놓으신 한 바구니 가득한 버섯들을 선물로 나눠주셨습니다.
다큐 상영 후에는 래리 콘님의 짤막한 자연농 이야기, 그리고 질문과 답변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래리 콘님은 후쿠오카 마사노부님 농장에서 함께 지내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자, 그 분의 책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영어로 옮겨서 전세계에 자연농을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입니다. 후쿠오카님의 농장에서 지내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이후로도 꾸준히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자연농의 흐름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스승에서 제자로 흐름이 이어지지만, 일반적인 도제관계에서처럼 같은 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게 아니라 매번 새롭게, 다른 형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자연농의 특별한 점이라는 걸 강조하셨습니다. 모두의 방식이 다 다를 수밖에 없고, 각자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자연농이라는 가와구치 요시카즈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후사코님 가족, 래리 콘님, 진행을 맡아준 스탭 친구들과 부엌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다큐에 대해, 상영회에 대해, 자연농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30년 전에도 꼭 이 순간처럼, 후쿠오카 마사노부님과 래리 콘님, 후사코님이 함께 저녁을 드시고 이야기를 나눴을텐데.. 오랜 세월이 지나 후쿠오카 마사노부님은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시지만, 여전히 이 자리에 모여 함께 자연농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문득 감격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래리 콘님이 말씀하셨듯이 꾸준히, 하지만 새롭게, 자연농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실감났습니다. 이 흐름 위에서 계속해서 만나지고 이어지는 신기한 인연들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후쿠오카 고속도로’ 위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거예요.” 라는 말씀에 함께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