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로부터 벗어나는 즐거움

다큐 ‘자연농’을 만들며, 많은 것들을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자연농을 실천하며 건강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농부들을 만나 직접 보고 들으며,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고, 차곡차곡 생각들을 더해가면서, 이러한 경험들이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저희의 삶도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담아온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을 모아 몇 편의 글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바른 먹을거리가 좋으니 이걸 먹어야 한다’는 주장에 그치지 않고, 실제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그런데도 왜 변화가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니다. 첫 글에서는 좋은 먹을거리의 경제적 측면에 대해, 특히 대형마트가 나쁜 이유와 지역농산물을 이용하면 좋은 점에 대해 소개합니다.

 

에딘버러 농부의 시장 (photo: P.M. Lydon | CC BY-SA)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식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좋은 먹을거리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산물을 이용하면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이롭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미 익숙해진 생활습관을 바꾸는 일이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이유, ‘대형마트에서 사는 게 가장 싸다’는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유기농은 비싸고 부담스럽다는 고정관념 또한 걸림돌이 됩니다. 실제로 일부 유통업체에서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유기농 제품들을 포장해서 비싼 값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케팅 수단으로 유기농을 이용하는 사업자들이 있고, 또 그런 상술에 현혹되는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르게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일반 생협이나 직거래 장터를 이용할 경우 일반농산물과 유기농산물의 가격 차이는 심하지 않습니다. 제철농산물의 경우 오히려 대형마트보다 유기농산물이 더 저렴하기도 합니다. (참고자료 ‘생협, 대형마트 일반사양보다 최대 30% 낮아 ‘ http://goo.gl/dvsJF7)

면밀히 따져볼수록 대형마트 쇼핑은 결코 경제적이지 않습니다. 가격차이를 떠나 가장 나쁜 점은, 늘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대형마트에는 언제나 할인상품이 가득합니다. 1+1, 반값할인, 사은품 증정 등등.. 숙련된 전문가들이 치밀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그들의 ‘고객님’이 가능한 한 돈을 많이 쓰도록 부추깁니다. 일반 소비자들이 그런 유혹들을 꿋꿋하게 이겨내기란 무척 힘든 일입니다. 미리 쇼핑목록을 준비해간다 하더라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시식코너를, 사은품까지 달린 한정판매 할인코너를 무심히 지나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가하면 대형마트의 할인상품들은 용량을 줄이거나, 패키지를 달리한 교묘한 눈속임인 경우도 많습니다. (참고자료 ‘눈속임 가격표로 소비자 우롱하는 대형마트의 꼼수’ http://goo.gl/oCP5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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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충동적으로 구입한 제품들은 처치곤란으로 버리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1인 가구나 핵가족에게 슈퍼마켓의 묶음판매는 더 큰 부담이 됩니다.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동안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약 15,000톤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낭비되는 경제적 가치는 연간 20조원에 이르며, 이로 인한 환경오염 역시 심각합니다. (참고자료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로 환경오염을 줄여보자’ http://goo.gl/8BNduI)

현명한 소비를 위해, 우리는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싸니까 이걸 사야겠다’가 아니라, ‘대체 이건 ‘왜’ 싼 걸까?’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생산된 건지,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왔을지, 곰곰이 따져봐야 합니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농산물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더 저렴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회사의 손실 없이 어떻게 그런 저렴한 가격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요? 품질이 뒤떨어지는 수도 있고, 무리한 유통과정을 거쳤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생산자, 유통업자에게 정당한 몫을 지급하지 않은 부당거래가 적발된 사례가 빈번합니다. (참고자료 ‘대형마트, 농산물 거래에도 ‘불공정 횡포’’ http://goo.gl/vV0wkB)

매번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쇼핑카트가 저절로 채워지곤 하던 신기한(?) 체험 이후, 저는 일단 습관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트에 가더라도 쇼핑카트나 바구니를 손에 들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고른 다음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쇼핑을 마치고 마트를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애초부터 대형마트에 가지 않기’입니다. 그 대신 유기농 농산물 직거래 장터(서울의 경우 ‘서울 농부의 시장’, ‘마르쉐@’ 등이 있습니다.), 생산자로부터 직접 농산물을 받아볼 수 있는 ‘제철꾸러미’, 생협 매장, 동네 작은 상점과 재래시장 등등 다양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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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이곳, 에딘버러에서는 매주 주말마다 ‘농부의 시장’이 열립니다. 싱싱하고 맛좋은 채소를 파는 유기농 상점에서 일주일치 채소를 한아름 사옵니다. 슈퍼에 파는 채소에 비해 훨씬 더 맛좋고 싱싱한데도, 값은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더 높은 정도입니다. 그리고 직접 이 채소를 기른 농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즐겁습니다. 처음 보는 채소들을 어떻게 요리할지 조언을 받기도 하고, 지난 번 사간 감자로 맛있는 수프를 끓여먹었다고, 정겨운 대화도 나눕니다. 이곳에서 쓴 돈은 다른 유통업체로 새어나가지 않고 곧바로 이 농부 아저씨에게로 갑니다. 포장, 배송, 진열 등 유통과정에 쓰이는 비용과 에너지도 모두 고스란히 절약되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나아가 지구환경에도 도움이 됩니다. 진정 경제적이고, 모두에게 이로운 ‘좋은’ 소비는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나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렇게 생활습관을 바꿔나가는데 2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자연농 농부들을 만나고 이야기들을 모으며 대부분의 도시인들의 식생활에 큰 문제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게 해당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먹을 것인지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졌고, 좀 더 내 몸에 이롭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외식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챙겨 다니는 습관을 들였고, 식품을 구입할 때도 믿을만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다른 제철 농산물들을 어떻게 조리할지 알아보면서, 자연스레 요리에 대한 관심이 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이 하루 아침에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꾸준한 연습을 거치며, 오랜 시간을 통해 서서히 바뀌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식생활의 변화를 통해 지출비용은 오히려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한 끼 사먹을 돈으로, 좋은 재료를 구입해서 여러 끼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수시로 감기와 비염에 시달리던 몸은 더욱 건강해졌고, 요리라는 즐거운 취미가 새로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변화가 뿌듯한 이유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다는 해방감 때문입니다. 삶의 질, 공동체, 자연환경 같은 가치들을 모두 뒤로 하고,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대기업의 탐욕스러운 경제활동에 더이상 휩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대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찾아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투표행위’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래콩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을 먹으면 재래콩 생산자를 지지하고 재래콩이 사라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고, 햄버거를 먹으면 산업화된 다국적 농업과 환경 파괴를 일삼는 공장식 축산업을 돕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처럼 매끼, 내가 무엇을 먹느냐, 먹을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입하느냐가 바로 변화의 시작입니다. 습관처럼 굳어진 대형마트 쇼핑 대신, 보다 넓은 시야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현명한 소비행위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큰 힘이 됩니다. 나아가 우리의 몸과 마음도 함께, 더 건강하고 행복해집니다.

 

* 참고자료

– icoop생협, ‘생협, 대형마트 일반사양보다 최대 30% 낮아‘  
– 디지털로그 블로그, ‘눈속임 가격표로 소비자 우롱하는 대형마트의 꼼수‘  
– 환경일보,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로 환경오염을 줄여보자’  
– 경향신문, ‘대형마트, 농산물 거래에도 ‘불공정 횡포’’ 
– 오마이뉴스, ‘음식을 먹는 것은 투표 행위, 왜냐면..’  

– 한겨레신문, ‘마트와 생협 ‘DNA’의 차이’  
– 중앙일보, ‘제철 먹거리 알뜰구매 방법’  
– 경향신문, ‘알아서 집으로 챙겨 보내주는 농산물 꾸러미’  

 

* 관련사이트

서울 농부의 시장 

마르쉐@ 

한살림 

두레생협 

아이쿱생협 

제철꾸러미 ‘언니네텃밭’

WWOOF C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