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 주 주말, 홍천 최성현 선생님 댁에서 다큐 ‘자연농’의 작은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홍천 상영회는 2014년 여름에 이어 두번째였습니다. 그때도 ‘임시 상영회’이긴 했지만, ‘거의 다 완성되었으니 처음 시작되었던 그 지점에서 다큐를 보여드려야지’ 하는 마음에서 준비했던 자리였지요. 하지만 그후로, 예상 밖의 추가편집이 이어지면서 결국 1년이나 더 걸려서, 이번에야 진짜 최종 완성본으로 다시 상영회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2015년 초부터 매월 열리고 있는 자연농 공부&실습모임 ‘지구학교’ 분들과, 최성현 선생님 부모님께서도 함께해주셨습니다. 특히 두 어르신께서는 ‘아이구,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찾아오더니, 정말 장하네. 기특하구만.’ 하며 열심히 보아주시고 힘을 듬뿍 북돋아주셨습니다. 중간중간 ‘어이, 저기 나오는 저 사람은 윗집 아저씨 아닌가?’ 하며 반가워하시기도 하고, ‘우리 논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참 좋네’ 하고 흐뭇해하셔서 더더 기뻤습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했던 작은 상영회를 마치고, 다함께 논으로 이동했습니다. 일찍이 추수는 다 마쳤지만, 한 해의 마지막 달, 올해도 무사히 농사짓고 거둘 수 있었음에 감사를 올리는 추수감사제를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12월의 홍천이라서 매섭게 추울 줄 알고 꽁꽁 싸매고 나섰는데, 의외로 춥지 않은 날씨에다 햇볕까지 따스해서 꼭 초겨울 같았습니다. 논에서는 호밀 싹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호밀도 벼도 우리도, 이렇듯 모두가 각자의 삶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도록, 생명의 양식을 내어주시는 고마운 이 땅에, 그리고 이 땅에 깃든 무수한 생명들에게, 우리의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논 한 귀퉁이에 햅쌀 담은 함지박을 놓고 둥글게 둘러서서 감사인사를 드리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최성현 선생님의 책 ‘산에서 살다’의 한 구절을 읽고나서, 다큐를 보는 동안 떠오른 생각들을, 논에 서서 느낀 감상들을 담았다는 오즈님의 아름다운 즉석 노래가 이어졌습니다.
벼의 아름다움을 보아요
나락 한 알에 우주가 있어요
저기 행복한 논밭을 보아요
모든 생명이 함께 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농부의 아름다움을 보아요
작은 미소에 우주가 보여요
이제 마음을 가다듬어
곡식 수확의 기쁨을 느껴요
모든 생명에 감사드리며
넓은 우주를 생각해요
아울러, 함께 나누고픈 글귀를 아래 올립니다. ‘우리가 감사해야만 태양이 계속 빛난다’는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더 겸손해지고 더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더 많이 감사하고, 더욱 더 지혜가 깊어지는 2016년이 되길 기원합니다.
* 고대인들이 태양을 숭배했던 것도 당연하다. 태양은 돌려받겠다는 기대도 가능성도 없이 베풀기만 하는 고유한 존재이며, 관대함의 현현이다. 태양은 생명권 전체에 동력을 제공하고, 화석연료와 태양열, 풍력, 수력의 형태로 과학기술권에도 동력을 제공한다. 나는 사실상 무한한 이 공짜 에너지의 원천에 감탄하며, 고대 태양숭배자들이 느꼈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감사를 표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의 영적 전통 속에는 우리도 태양에 보답한다는 생각, 사실상 우리가 감사해야만 태양이 계속 빛난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고대의 태양 의식은 단지 태양에 감사하는 의식이 아니라, 태양이 계속 빛나게 하려는 의식이었다. 태양 에너지는 지구의 사랑이 반사되어 돌아온 빛이다. 선물의 순환 원리는 여기서도 작동한다. 이렇게 우리는 태양과도 분리돼 있지 않다. 가끔 우리 내면의 태양이 관대함의 빛과 온기로 다른 모두를 비추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_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찰스 아이젠스타인
* 만약 이 세상이 성역이라면, 그렇다면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행동양식은 공경이 될 것이다. / 인생은 일종의 축제이므로, 건강한 몸과 내면의 평정을 찬양하는 법을 배우자.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지구 어머니를 치유하는 데에 기여하자._ <에코 요가>, 헨릭 스콜리모우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