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시작한 “REALtimeFOOD” 프로젝트.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들께 ‘주문’을 받은 후 바로 음식을 서빙하는 대신, 직접 채소들을 길러야 하니 7월 말 다시 찾아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약속한 한 달 반이 지나 마침내 그 주문들을 낼 수 있었습니다. ‘직접 길러 요리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레스토랑이 긴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문을 열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 전, 한 달 반 동안 “REALtimeFOOD” 프로젝트가 지나온 과정을 사진들과 함께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특히 텃밭을 막 시작하던 날과, 주문 이벤트 당일 아침에 담은 풍경은 불과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생명력 가득한 텃밭의 변화를 매일 지켜봐온 저희도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그렇게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자연과 예술에 관한 워크샵을 마련했습니다. 도시 안에서 보다 쉽고 편안하게 자연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한 ‘자연 그림 그리기’, ‘꽃잎 카드 만들기’, ‘자연 감각 느끼기’ 등의 시간이었습니다. 동네 주민과 아티스트, 오사카 외곽 유기농 농장에서 알게 된 엄마와 꼬마들, 저희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스탭과 외국인 여행객들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해주었습니다.
이 워크샵들의 목적은 단순히 예술작품을 자연적으로 만들어내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자연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차근차근 이해하면서, 보다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고자 했습니다. 아울러, 참가하신 분들이 워크샵 이후로도 꾸준히 자연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이어갈 수 있을만한 쉽고 상세한 내용들을 전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REALtimeFOOD의 마지막 이벤트 역시 독특한 개념의 레스토랑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그리고 우리와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마련했습니다. 6월 초 주문을 받은 이후, 예약손님들께 매주 텃밭의 작물들이 자라는 모습과 간단한 소식들을 메일로 띄우며 이야기를 띄워보냈습니다. 기타카가야 근처에 사시는 한 손님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밭에 들러서, 곧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될 작물들을 둘러보고, 저희 밭에 가득한 메리골드 한다발을 선물로 받아가시기도 했습니다.
모든 워크샵에 통역으로 함께해주었고, 첫 오프닝 이벤트와 마지막 이벤트에서는 직접 요리를 맡은 저희의 오랜 친구 카오리는 마크로비오틱을 꾸준히 연구해온 요리사입니다. 텃밭에서 막 수확한 제철채소들의 제맛을 살린 ‘기타카가야 채소 정식’은 맛도 영양도 모양도 모두 훌륭했습니다.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며, 자연 그대로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마크로비오틱의 철학과 ‘세상에서 가장 느린 레스토랑’의 컨셉이 아주 잘 맞아서, 카오리 역시도 기쁘게 동참할 수 있었다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렇듯 맛있는 음식과, 알찬 이야기들, 그리고 워크샵에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의 전시회가 어우러진 디너 이벤트는 쭉 화기애애하게 이어졌습니다. 이미 주문 이벤트에서, 또는 여러 차례 워크샵에서 서로 만난 적 있는 손님들은 일행이 아니어도 마치 원래 알던 친구들처럼 어울리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서빙을 맡은 저희는 내내 그릇을 나르고 주방 일손을 돕느라 무척이나 분주했지만, 공간 안을 가득 메우는 떠들썩한 웃음소리들을 들으며 마음 깊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오사카 외곽의 작은 동네 기타카가야. 과연 이 낯선 곳에서, 2달 가까이 이어지는 긴 프로젝트를 잘 치뤄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분들의 도움과 참여 덕분에, 그리고 풍요로운 자연의 은혜 덕분에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주말텃밭 2년 경력이 전부인 저희 초보 농사꾼들의 텃밭은 놀랍도록 풍성한 수확을 거뒀고, 처음 시도해본 자연 예술 워크샵들 역시 매번 참가자 분들과 함께 새로운 배움을 얻으며 알차게 진행됐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기쁨과 즐거움들로 가득했던 지난 시간들을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다큐 ‘자연농’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질, 저희가 만들어가고픈 변화의 움직임이 이렇게 막 첫 발을 내딛었구나, 하는 뿌듯함과 감사함이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비록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지켜봐주시고 관심을 보내주신 한국의 독자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