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동안의 휴스턴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중남부 휴스턴까지는 2천 km가 넘는 거리. 직항이 거의 없어 비행기로도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리고, 두 곳 사이엔 2시간 시차도 있습니다. 멀고 먼 이 길을 떠나온 이유는 단 하나, 음악그룹 Windsync와의 녹음 작업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쭉 빈 공간으로 남겨져 있던 사운드 트랙의 녹음을 마치고나니, 성큼 더 목적지에 다가온 듯한 기분입니다. 여전히 다큐 완성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한 발씩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휴스턴 기반의 목관5중주그룹 ‘Windsync’는 5년 전 패트릭의 개인전 ‘Pretty Little Marks’ 프로젝트에서 협연했던 오랜 인연입니다. Windsync는 단순한 클래식 연주그룹을 넘어,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클래식을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재미 가득한 공연, 청소년을 위한 쉽고도 진지한 접근, 작은 도시들을 찾아다니는 투어 등등 다방면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펼치고 있습니다. 처음 저희 다큐 ‘자연농’을 소개하고 참여를 요청했을 때, 각자의 활동영역은 다르지만 스스로 옳다고 믿는 가치를 나누려는 본뜻은 꼭 같다며 함께 기뻐하고 반가워했습니다.
그런 깊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Windsync는 저희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동참해주었습니다. 금전적 대가 없이, 마침 공연 영상과 사진 기록이 필요하니 일종의 ‘재능교환’으로 하면 어떻겠냐며 제안해와서, 저희 역시 기쁜 마음으로 내년 투어의 일부에 함께하며 기록을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틈틈이 메일과 화상채팅을 통해 녹음에 관한 여러 차례 상세한 의견들을 주고받았고, 바쁜 일정 중 시간을 조율하고 공간을 물색해서 이번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장면에 어떤 느낌의 음악이 필요한지, 저희의 상세한 설명에 이어 전체적인 분위기, 각 악기별로 어떻게 역할을 나눌지, 어디에 강조점을 둘지, 멤버들과 함께 충분한 대화를 나눈 다음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전문 녹음실이 아닌 이스라엘 문화센터의 한 공간, 그리고 전문 녹음장비도 없이 커다란 쓰레기통(!)과 보드게임들을 활용한 임시 거치대와 작은 마이크를 활용한 아마추어 수준의 녹음환경이었지만, 결과물은 ‘역시!’ 감탄할만큼 훌륭했습니다. Windsync 팀의 단단한 팀워크과 오랜 경험, 그리고 서로를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과 의지가 뒷받침되어 아름다운 음악이 빚어졌습니다.
이렇게 사운드 트랙 녹음이라는 큰 산을 하나 넘고나니, 임시 상영회라는 또다른 고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 녹음한 음악을 넣어 편집한 후, 지난 여름 서울과 대전, 홍천에서 진행했던 것과 같이 ‘피드백을 위한 임시 상영회’를 열어 의견을 모으려 합니다. 곧이어 다음 주에는 다시 한국으로 향합니다. 겨울 동안은 한국에서 지내며 최종 편집과 마무리 작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렇듯 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나긴 하늘길 위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떠올려봅니다. 느리고 끝없는 여정이지만, 닿아야 할 목표지점이 있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동시에 언제나 즐겁고 기쁜 여정입니다. 늘 저희 다큐 ‘자연농’을 지켜봐주시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녹음 작업 중, 그리고 여정을 통해 담아온 여러 풍경들을 모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