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The Branch’를 소개합니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날들을 쭉 돌이켜 보았습니다. 2011년 가을 다큐 ‘자연농’ 작업을 시작한 후 햇수로 7년, 젖먹이 아기가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각각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이었던 저희 두 사람은 흰머리가 잔뜩 늘어난 채 삼십대 중후반을 보내고 있고, 애매한 친구 사이와 오랜 연인 사이를 거쳐 지난 가을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시간의 흐름은 실감나지 않지만, 그 기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추억들을 떠올려보노라면, 흔한 말이지만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한국, 미국, 일본, 영국 등 여러 나라들을 두세 달 간격으로 떠돌아다니며 지냈습니다. 가장 오래 신세를 진 서울과 캘리포니아의 부모님 댁, 몇 달 동안 빌렸던 집, 곳곳의 친구네 집을 전전하며 끊임없이 짐을 풀고 다시 챙기며 다녔습니다. 비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리며 다음 행선지를 찾아야 하는, 나만의 아늑한 공간 없이 임시로 짧게 지내는, 한곳에서 긴 호흡으로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이 차차 버거워지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공간’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봄, 일본 오사카에서 오랫동안 바라온 그 ‘우리의 공간’을 시작하려 합니다.

공간의 이름은 ‘The Branch’, 뜻은 ’나뭇가지’입니다. 2015년 여름 ‘Real-TIME-Food 세상에서 가장 느린 레스토랑’ (이하 RTF)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오사카 남서부 기타카가야에서 갤러리 겸 다목적 생태예술 공간 겸 저희의 생활공간과 작은 텃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곳 기타카가야에는 큰 공장들이 많고, 공장 노동자들이 사는 작은 집도 많습니다. 그리고 공장들이 옮겨가거나 문을 닫으면서 빈집도 늘어나고 있지요. 이 동네에 뿌리를 둔 ‘치시마 토지회사’와 ‘치시마 문화재단’에서는 쇠락해가는 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힘쓰고 있습니다. 저희의 RTF 프로젝트도 치시마 재단의 지원금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 저희가 그랬듯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 여름 두 달 반 동안 RTF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희는 이 동네가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허름해 보이는 낡은 집이어도, 꼼꼼한 손길이 더해지면 개성 넘치는 멋진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이웃의 ‘에어 오사카 호스텔’과 안경가게 ‘카쿠레야 1635’를 보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계속 펼쳐가고픈 생태, 예술 및 대안 생활에 관한 움직임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 호스텔 주인장 토모를 비롯한 가까운 벗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도움도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올해부터, 차 한 대 지나가기 버거운 작은 골목 안 낡은 2층집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오래도록 혼자 사셨다는 이 집의 첫인상은 사실 썩 달갑지 않았습니다. 누렇게 바랜 벽 곳곳엔 곰팡이까지 피어 있었고, 저희가 생각하던 갤러리 겸 예술 공간, 동네 카페를 열기엔 너무도 비좁아보였습니다. 어둡던 제 표정과 달리, 패트릭은 ‘우리가 잘 손보면 분명 재밌는 공간이 될 거야!’ 라며 즐거워했습니다. 여름밤 수많은 고민과 대화를 거쳐 마침내 이곳에서 ‘우리의 공간’을 꾸리기로 결심하고, (저희가 낸 책의 제목과는 달리) 불안과 걱정, 그리고 설레임을 품고 지난 달 오사카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집주인 격인 치시마 토지회사에서 기본적인 보수공사를 해주었지만, 저희가 바라는 모습대로 이 공간을 꾸려가는 건 온전히 저희 몫입니다. 12월 초, 저보다 먼저 오사카에 도착한 패트릭은 ‘처음엔 정말 막막했어.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거든. 일단 눈에 들어오는 곳부터 시작해보자‘ 하고 해나가니까 차차 일이 진행되더라.’ 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마침 치시마 토지회사의 창고에서 마음껏 목재를 가져다 쓸 수 있어서, 재료비 걱정 없이 좋은 나무를 재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마루에 나무를 깔고, 필요한 탁자를 만든 다음, 차차 벽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두운 색 페인트를 긁어내고, 교토에서 많이 쓴다는 풀과 모래가 섞인 마감재를 발랐습니다.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조금씩 한 부분씩 완성될 때마다 ‘과연 다 완성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하는 설렘과 기대가 점점 더 커져갑니다.

공간의 정식 오픈은 3월 초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층의 갤러리 공간에서는 전시회를 열 예정으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고, 2층의 저희의 생활공간 겸 모임을 위한 좌식 공간에서는 저희가 그동안 진행해왔던 명상모임, 책모임, 워크숍 같은 행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걸어서 1분 거리, 지금도 저희가 꾸준히 신세를 지고 있는 일본인 친구 토모의 ‘에어 오사카 호스텔’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차차 준비 중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 혹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 공간과 저희의 활동에 관심이 간다면, 마음껏 연락해주세요. 아울러 아래 주소에서 이 공간을 위한 펀딩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https://www.generosity.com/community-fundraising/the-branch-by-patrick-and-suhee

‘The Branch’의 시작부터 소개, 진행 상황까지 한꺼번에 전달하려다보니 글이 몹시 길어졌습니다. 긴긴 이야기를 어디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까, 막막해하며 미루느라 이곳 소개도, 저희가 하고 있는 일들의 소식을 전하기도 영 머쓱한 상황이었지요. 앞으로는 더 자주, 더 생생히 이곳 소식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내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