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밸류가든에서 열린 상영회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하게, 화기애애하게 수다들이 오갔습니다. 그 온기가 잊혀지기 전에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함께 나누고 싶어 서둘러 후기를 적습니다. 밸류가든은 ‘정원을 가꾸듯 가치를 가꾸는‘ 공간입니다. 밸류가든 첫 방문 이후 패트릭은 미국에서 ‘Value’라는 말이 얼마나 잘못 쓰이고 있는지, 원래 담겨 있는 뜻이 어떻게 오염되고 말았는지에 대한 짤막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첫 만남부터 같은 꿈을 품고 있는 오랜 벗을 만난 듯 든든한 기분이었는데, 그 후 이어진 자연 워크샵에서, 그리고 이번 상영회에서 다시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어 참 기뻤습니다.
앉은뱅이밀 시골빵과 직접 만든 잼, 포실포실 감자와 맛좋은 귤.. 밸류가든 신은희 대표님께서 알차게 마련해주신 건강한 간식들에다 옥천에서부터 직접 들고 오신 달디단 곶감까지, 알찬 먹을거리 덕분에 더욱 정답고 풍성하게 상영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쭉 이어온 것처럼 상영 시작 전 짤막한 저희 소개만 이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으니, 오신 분들의 짧은 소개를 들어볼까요?’ 하는 신은희 대표님의 제안 덕분에 관객분들의 이야기부터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귀농에 뜻을 두고 계신 어르신부터, 자연치유와 반GMO 운동에 힘쓰고 계신 분, 예전부터 저희 다큐 작업에 대해 알고 계셨고, 이번 상영회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옥천에서 올라오신 농부분들과,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고민하고 계신 청년, 생협운동을 하고 계신 분들, 지금은 문화기획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생식, 건강한 식생활에 쭉 관심을 두고 계신 분, 인사동에서 갤러리를 운영 중이신 분까지. 제각기 다 다른 배경이지만 자연에 대한 관심과 공감으로 한데 엮이고 이어져 있었습니다. 각기 다르고 그래서 더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동안 열렸던 상영회들에서는 저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전달하는 데에만 집중했지 정작 관객분들의 이야기에는 충분히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걸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공감대를 미리 마련한 덕분에, 상영 후 다시 이어진 대화의 시간은 어느 때보다도 다채롭고도 알찼습니다. 둥글게 모여 앉아서 각자의 소감과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저희가 늘 자연농에 대해 소개할 때마다 설명하는 아래 그림에서처럼 수직적, 권위적이지 않고, 모두 함께 조화롭게 어울려 있는 듯 편안했습니다. 일반적인 질문/답변이 아니라 두루 활발히 의견을 나누는 자리여서 더욱 깊이 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었습니다.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어 차차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는 어르신께서는 ‘정말이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요. 토종씨앗을 구해서, 자연농으로, 내가 직접 길러먹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고 많은 분들이 공감했습니다. 이어 강남/서초 녹색당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께서 토종씨앗에 관한 모임을 연결해드리기로 하면서 또다른 새로운 이어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4년째 자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옥천의 농부님과, 반GMO 운동에 힘쓰고 계신 분께서는 어떻게 자연농에 담긴 생각을 퍼뜨릴 수 있을지, 힘을 모아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면서도 또 닮아 있는 의견들을 나누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길게 이어진 대화의 시간, 맨 마지막 질문은 ‘이 다큐를 만들며 어떤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는지?’ 였습니다. 저는 ‘원하는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농부들의 곧고 바른, 그와 동시에 무척이나 행복하고 확신에 가득차 있는 모습’이라고 답했고, 패트릭은 ‘기존에 고민해온 모든 문제들 – 생태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비롯한 현대 사회의 모든 심각한 문제들에 이 자연농이 아주 단순한 해답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답했습니다. 덧붙여 그 ‘해답’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상영회 전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며 짧은 메모를 준비했습니다. 저희 다큐에서 줄곧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실생활 속에서 어떻게 그 ‘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한 안내가 필요한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짤막한 메모를 바탕으로, 그리고 어제의 대화의 자리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모아, 저희가 생각하는 ‘Final Straw – 변화의 시작점’에 대해 정리하며 어제의 후기를 마칩니다.
<다큐 ‘자연농(Final Straw)’이 제안하는 변화의 시작점>
–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 생산자-소비자 관계를 넘어 서로 힘을 북돋을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맺어나가기. 다큐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 원숭이가 와서 감자를 절반 넘게 먹어치워도, 그 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서로 공생하는 건강한 관계가 곳곳에서 시작된다면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 것. 단지 농부와 도시 사람들 사이뿐 아니라 삶 속에서 맺어지는 모든 관계들을 가능한 한 건강하고 이롭고 좋은 쪽으로 만들어나가기.
– 잘못된 흐름에 힘을 보태지 않기 : 부의 집중, 불평등, 환경파괴 등등 지금 이 대량생산 기반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문제에 최대한 동참하지 않기. ‘모든 선택이 투표행위’라는 말처럼, 내가 지출하는 이 돈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쓰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 대형마트에서 조금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 = 대형 자본에 힘을 보태고 결과적으로 그 자본이 더 성장하도록 돕는 것 vs 지역상점에서 구입하면서 조금 더 값을 치르는 것, 직거래 장터에서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 = 지역경제가 이어지도록, 농부들이 더 안정적으로 농사를 이어가도록 돕는 것.
– 내가 당장 할 수 있을 만큼만 즐겁게 하기 : 각자 상황에 맞춰, 가능한 만큼만 즐겁게 해나가는 것. 억압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고 결국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신나고 재미나게, 꾸준히 펼쳐나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