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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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돌아보며
: 다큐 ‘자연농(Final Straw)’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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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늦가을의 일입니다. 꾸준히 생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온 저희는 홍천의 최성현님을 찾아 짧은 인터뷰를 담아왔습니다. 몇 차례 최성현님의 논을 찾아 일손을 거든 적은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자연농에 대해서는 그저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현장을 직접 돌아보며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이후 자연농에 대해 점점 알아가면서 이 소중한 이야기가 알려져 있지 않다는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자연농 다큐멘터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농부들을 찾아다니면서 다큐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뜬금없다 생각했던 패트릭의 제안이 다큐 ‘자연농’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다큐와는 아무 관련도 없던, 기초지식조차 전혀 없던 초보 둘이 겁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운이 좋게도, 필요할 때마다 고마운 인연들이 곳곳에서 나타나 거들어주었습니다. 취재와 통번역, 음악 편곡 등 거의 모든 면에 걸쳐 도움의 손길을 얻으며 작업을 쭉 이어왔습니다. 예상했던 제작기간은 약 1년 반이었는데, 자연스레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4년이 걸렸고, 올 가을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 내내 마흔 번이 넘는 상영회들을 열며, 약 1,000명이 넘는 관객들과 만나고 자연농의 철학을 나누어왔습니다.

돌아보면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까닭은, ‘자연농’답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대로 과정을 이어왔기 때문인 듯 합니다. 다큐 제작과 동시에, 인연이 닿는 곳, 필요한 곳, 흥미로운 곳으로 가서 주어지는 몫들을 즐겁게 해나갔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올 여름 일본에서 펼쳤던 ‘Real Time Food’ 프로젝트였지요. 도시 안에서 사람과 자연을 더욱 가깝게, 보다 건강하게 다시 잇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깃든 지혜를 나누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다큐에서 전하고픈 메시지와도 꼭 이와 같습니다. 저희는 직접 작은 텃밭을 가꿔가며, 그 밭에서 감각 워크샵, 잎사귀 워크샵, 자연 그림 워크샵 등을 열었습니다. 이 워크샵들은 이후 한국에서도 꾸준히 이어지며 다큐에 담긴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뒤늦게 고백합니다만, 오랜 시간 품어왔던 다큐가 마침내 마무리되어 상영회를 시작한 지난 가을, 기쁨보다는 오히려 아쉬움과 막막함이 더 컸습니다. 쭉 붙들어온 무언가가 손아귀를 빠져나간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과정을 짚어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쭉 그래왔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대로, 인연이 닿는대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우리가 줄곧 고민해온, 나누고자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힘껏 내보내자고 씩씩하게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다시 돌이켜보면 4년 전의 그 선택은 무모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래서 그 진심의 힘으로 지치지 않고 긴 여정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2015년의 끝, 다시 그 첫 마음을 되새기며 이 글을 띄웁니다. 꾸준히 다큐 ‘자연농’을 지켜봐주신 분들께 고개숙여, 손을 모아, 감사드립니다. 다큐 ‘자연농’을 바탕으로, 앞으로 이어나갈 저희의 다양한 활동들에도 꾸준히 귀기울여주세요. 아울러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고 활기찬 겨울날 맞이하시길, 매일매일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날들을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15년 12월 31일
강수희 + 패트릭 라이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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